100일이면 동굴에서 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을 먹고 지내면 곰이 사람도 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초여름에 자전거 사고로 대퇴골을 다쳐서 수술한 지 벌써 100일 하고도 보름이 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이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수술 후 처음 한 주간은 죽은 것 같이 병상에서 누워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출입하는 일도 큰 진보였습니다. 5주간만에 두 병원을 거쳐서 퇴원을 하고 집에 왔지만, 그 때는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기본 생활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목발 하나로,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움직이며, 아쉬운대로 사람구실을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입원하면 사람이 환자가 되어서인지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더니, 몸이 회복되면서 처음에는 <식객> <오키나와> 등 만화책을 시작으로, 뒤에는 차인표 님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그들의 하루> 를 읽었습니다. 마침내 요즈음은 옛날부터 읽고 싶었던 신학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청교도의 후예로 자처하는 신앙의 전통 때문인지, 1970년대 초부터 그들의 책을 일단 구입하고 소장해 두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400쪽이 넘는 존 오웬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번역서로 읽었고, 이번에는 양낙흥 교수가 쓴 750쪽이 넘는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는대로 저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로이드 존스는 두 권짜리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표지에 ‘만약 나에게 권위가 주어진다면 이 두 권의 책을 모든 목사의 필독서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설교와 목회, 모든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빚진 것이라는 것을 주저없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을 저자로부터 2003년에 선물을 받았지만 현역 목회를 하는 동안에는 표지만 바라보다가, 이번에 다쳐서 강제로 홈캉스 시즌을 보내면서 비로소 청교도들을 만나니 감격입니다. 이제 그동안 구입해서 소장했던 청교도 책들을 하나씩 읽으려고 합니다만, 아마도 그 많은 책을 다 읽기 전에 천국 가서 그분들을 만날 것 같습니다.
이번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을 읽으면서 나의 청교도 사랑은 참으로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부끄러워졌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 사랑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 뉴잉글랜드 부흥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평가한 그 지성과 영성, 그리고 겸손함이 놀랍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듣기만 했던 뉴잉글랜드의 부흥을 보면서 욥의 고백을 흉내내고 싶습니다. “내가 청교도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글로 그들을 만납니다” 더 나아가서 에드워즈의 뉴잉글랜드 부흥 이야기를 통해서 그 때의 부흥이 그리워집니다. 놀라운 부흥을 이 땅에 주시도록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 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