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목발 하나를 의지해서 두산리 들판길을 매일 걷습니다. 기본 멤버는 나와 아내, 그리고 처제 모두 3명이지만, 매주 토요일은 정기적으로 4명이 걷습니다. 우리 앞집에 살고 계신 남부교회 손 집사님이 함께 걷습니다. 주중에는 직장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와서 일상을 깨뜨리는 손님들이 주중에 오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3 사람이 1 박을 하고 뒷날 아침 산책에 동행하기도 하고, 최근 들어서는 아침 7시 출발시간에 맞춰서 시내에서 들어오시는 분이 산책에 동행하기도 합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울산 시티센터교회 신 목사님이 아침 7시에 오셨습니다. 길을 오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한 시간 산책 후 집에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그 때 나왔던 주제 가운데 하나를 오늘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담임목사 신임투표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청빙투표를 생각해 보면,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담임 목사 후보가 한 사람 정해지면 그를 두고 모든 세례교인들이 투표를 합니다. 이 때 투표자의 2/3가 원하면 청빙을 받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시무를 하던 이전의 풍습과는 달리, 요즈음 와서는 위임목사의 경우에도 어떤 교회는 정관에 따라 정한 기간이 되면, 신임투표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도 청빙 때와 같이 찬성이어야 한다고 근거없는 주장하여, 1/3이 똘똘 뭉쳐서 반대를 하면, 반대를 하지 않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어보내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교회든지 정관을 만들어서 규정을 따라 4~6년 정도에 신임투표를 그대로 시행해야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수도권이나 대구, 울산 등, 제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 정관에 따라 신임투표를 하니, 아침에 함께 걸었던 목사님이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을 듣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대로는 공교롭게도 같은 학생단체와 관련이 있거나 서울에 있는 몇몇 교회와 울산에서 근래에 정관을 만들던 두 교회도 나와 무관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울산의 한 교회는 신임투표를 하는 것은 교회에 유익하지 않다고 반대하는 신뢰받는 한 집사님의 설득으로 그 규정을 제거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회는 당시 담임으로 있던 목사님이, 자신은 신임을 얻는 일에 문제가 없지만 그런 규정이 만들어지면 피해를 입는 동역자들이 있을 것을 내다보고 강력하게 반대해서 그 규정을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도권 교회들 가운데는 이미 담임목사 신임투표를 6년마다 시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운다고 했을 때, 한국교회 전체를 바라보면서 특히 그 가운데 문제를 일으키는 목회자들을 생각한다면 신임투표제도라도 만들어야 되겠다는 충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낭만적인 이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현실뿐 아니라 개 교회의 처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정관을 만들어 신임투표를 실시하면 교회가 바뀔 것이라는 입장은 너무 현실을 만만하게 본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운동의 핵심 역할을 했던 어느 대학의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교회답지 못한 교회에서 시달린 경험 때문에, 그 핵심이 담임 목사 신임투표가 있는 교회정관 제정 운동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기에, 이해는 되나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문제(?)가 있어서 그만 두도록 해야 하는 목사는 버티고, 오히려 그런데로 열심히 사역하는 착한(?) 목회자는 내어보내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4, 5 년에 한 번씩 갈아치워야 할지 모르나, 만약 가장(家長) 신임투표를 정기적으로 한다면 각 가정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정치공동체보다는 가족공동체를 닮았으면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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